한국여자배우

강수연(배우)에 대해알아보자

SNFZOP 2023. 6. 3. 12:44

대한민국의 배우.

대종상, 청룡영화상, 백상예술대상, 베니스 국제 영화제 등에서 여우주연상 총 10관왕을 달성했다. 드라마 '여인천하'의 정난정 역으로도 유명하다.

 

강수연은 1966년 11월 16일에 태어난 한국의 여자 배우입니다. 그녀는 1971년 영화 "방울토마토"로 데뷔했으며, 이후 "씨받이", "아제아제 바라아제", "비오는 날 수채화",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 등 다수의 영화에 출연했습니다. 그녀는 1987년 영화 "씨받이"로 베니스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으며, 1993년 영화 "아제아제 바라아제"로 칸 영화제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랐습니다. 그녀는 2001년 영화 "비오는 날 수채화"로 대한민국 영화대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했습니다.

강수연은 한국 영화계의 대표적인 배우 중 한 명입니다. 그녀는 뛰어난 연기력과 카리스마로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녀는 한국 영화의 발전에 큰 기여를 한 배우입니다.

강수연은 2022년 5월 5일 55세의 나이로 사망했습니다. 그녀의 사망은 한국 영화계의 큰 손실입니다. 그녀는 한국 영화의 역사에 길이 남을 배우입니다.

강수연의 명복을 빕니다.

 

강수연 감각적인 아우라와 매혹적인 외모


강수연은 탄탄한 신체비례와 아름다운 얼굴로 사랑받았습니다. 그녀의 탄탄한 몸매와 선명한 미모는 많은 이들의 시선을 사로잡았으며, 그녀만의 독특한 아우라는 그녀를 특별하게 만들었습니다. 강수연은 과도한 변형없이 자연스럽게 나이를 먹어가면서도 여전히 아름다움을 유지하는 모습으로 팬들에게 실망시키지 않았습니다.



강수연 다양한 역할의 도전


강수연은 다양한 영화와 드라마에서 다양한 역할을 소화하며 연기력의 전설로 꼽힙니다. 그녀는 로맨틱 코미디부터 미스터리 스릴러까지 다양한 장르의 작품에 출연하였고, 각본에 따라 다른 캐릭터를 소화하는 능력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녀의 연기는 정교하면서도 감정의 깊이와 진정성을 전달하여 관객들에게 깊은 감동을 선사했습니다.


강수연 대중들의 사랑과 인정


강수연은 오랜 연기 경력과 함께 대중들의 사랑과 인정을 받아왔습니다. 그녀의 연기력은 여러 시상식에서도 인정받았고, 그로 인해 다수의 여우주연상을 수상하였습니다. 또한 그녀의 팬들은 그녀를 응원하며 그녀의 작품들을 사랑하고 기억해왔습니다. 강수연은 대중들에게 오랜 기간 동안 사랑을 받으며 한국 여자배우의 아이콘이 되었습니다.


강수연 사회적 이슈와 영화계 발전에 기여

강수연은 연기자로서만 머물지 않고, 사회적인 이슈에 관심을 가지고 참여하였습니다. 그녀는 여성의 권리와 성평등, 다문화 가정 등 다양한 사회적인 문제들에 관심을 가지고 소통하였고, 이를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었습니다. 또한 그녀는 젊은 세대의 배우들에게 멘토 역할을 수행하며 한국 영화계의 발전에도 기여하였습니다.

강수연은 한국 여자배우로서 독보적인 매력과 연기력으로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았으며, 그녀의 존재 자체가 한국 영화계에 큰 의미를 선사한 것은 분명합니다. 오늘은 강수연의 블로그 형식으로 작성해보았는데요, 강수연의 여러 작품들을 찾아보시고 그녀의 매력적인 연기력을 감상해보시기 바랍니다. 앞으로도 그녀의 활약에 많은 기대를 해봅시다! 감사합니다.

 

강수연 활동

1980년의 언론통폐합 이후로는 KBS로 활동 무대를 옮겨 1981년 KBS1 <모이자 노래하자>에서 이상용과 사회를 본 바 있고, 1983년엔 청소년 드라마 '고교생 일기'가 큰 인기를 얻으며 당시 손창민과 더불어 최고의 하이틴 스타로 떠올랐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 1985년 영화 '고래사냥 2'로 성인 배우로서 첫 활동을 시작했다.
1987년부터 강수연의 본격적인 전성기가 시작되었다. 1987년에 개봉된 '미미와 철수의 청춘스케치'는 그 해 한국 영화 흥행 순위 1위를 기록하며 대흥행, '우리는 지금 제네바로 간다'는 관객 수 124,259명을 동원하며 흥행에 성공했다. 이에 대종상에서 여자 인기상과 첫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는 기염을 토했다.

이 기세를 이어받아 파격적인 소재를 다룬 영화 '씨받이'가 국내 흥행에는 실패했으나, 해외에서 뜻밖의 주목을 받아 베니스 국제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게 되었다. 동아시아 배우 중 최초.[] 이때부터 강수연에게 월드 스타라는 칭호가 붙게 되었다.

1989년 영화 '아제 아제 바라아제'가 개봉했다. 강수연의 삭발[] 투혼이 강렬한 인상을 남겼으며, 이후 모스크바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당시 영화제 심사위원장은 폴란드의 세계적 거장 안제이 바이다 감독이었다.

'씨받이', '아제 아제 바라아제'가 국내외에서 이례적인 성과를 거두며 화려한 전성기의 시작을 알렸고, 이어 개봉한 영화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 '경마장 가는 길', '그대안의 블루' 등이 연이어 대박을 터뜨리며 영화계의 흥행 보증수표로 자리잡았다. 그러나 1994년에 개봉한 스릴러 영화 '장미의 나날'[]이 평단에게 혹평을 받고 상업적으로도 첫 실패를 하게 되었다.[] 더불어 조금씩 치고 올라오는 후배 여배우들[]과 브라운관에서 활동하던 여배우들이 대거 영화판으로 이동, 자연스레 세대교체가 진행되었다. 이후 '그 여자 그 남자',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가 어느 정도 흥행하기도 했으나, 이후 지나치게 호불호가 갈리는 내용들의 영화로 대중들의 혹평을 받았다.

1999년, 영화 '송어'가 개봉되었다. 흥행은 좋지 못했으나 작품성은 호평을 받아 도쿄 국제 영화제 특별상, 백상예술대상 여자 최우수연기상을 수상하는 등의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다가 2001년, 드라마 '여인천하'에 주인공 정난정 역할로 출연해 오랜만에 브라운관 복귀를 알렸다. '여인천하'는 최고 시청률 35.4%를 기록하며 큰 인기를 끌었다. 이로 인해 본인의 연기 경력 최초로 전인화와 함께 SBS 연기대상 대상을 수상했다. 이후에는 영화에 간간이 출연했으며, 특히 영화 관련 행사에 자주 등장했다.

2015년, 부산국제영화제의 공동 집행위원장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행정 경험이 전무한 것에 비해 열정적인 모습을 보인다"고 호평을 받기도 했으나, 2017년 부산국제영화제의 직원들이 "소통의 단절 및 독단적 행보가 지나치다"는 성명서를 발표해 논란이 되었다.# 결국 2017년을 마지막으로 자진 사퇴했다.#

2013년 단편 영화 '주리' 이후로 연기 활동을 하지 않았는데, 2021년에는 연상호의 영화 '정이'에 출연한다는 소식을 알리며 장편 상업 영화로는 약 10년 만에 복귀하였다. 2022년 1월 촬영을 마치고 연내에 개봉할 예정이었으나...

 

강수연 사망

2022년 들어서 건강상의 문제가 생기면서 병원을 다니기 시작한 상태였다고 한다. # 그러던 중 5월 5일 오전부터 두통을 느낀 강수연은 본인이 119에 신고해 구급대원들이 출동하기도 했으나 당시에는 병원 후송을 원치 않아 철수했다고 한다. 하지만 오후 5시 48분에 강수연의 가족들이 넣은 신고를 받고 119가 다시 출동하였으나 그때는 안타깝게도 이미 심정지를 일으킨 상태로 발견되었다고 한다.

이후 심폐소생술(CPR)을 받으면서 강남세브란스병원 응급실로 이송되어 뇌출혈 진단을 받았고 혼수상태에서 병원 치료를 받기 시작했다. #1 #2 #3 5월 6일에는 중환자실에서 경과를 지켜보고 있는 상태라고 알려졌는데, 수술을 통한 치료는 고려하지 않는다고 했다. 병원에서 수술을 해도 경과가 나아지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하여 가족들도 수술을 포기한 것이 이유로 전해졌다. #

일련의 소식들이 언론 보도로 알려지자 부산국제영화제 초대 집행위원장 김동호[], 임권택[], 류승완, 설경구 등 영화계 인사들이 그의 쾌차를 기원하는 메시지를 줄지어 발표하며 희소식을 기다렸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2일도 채 지나지 않은 5월 7일 오후 3시, 결국 의식불명 상태에서 치료를 받던 중 증세가 급격히 악화되어 더 이상 회복하지 못하고 향년 55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사인은 뇌동맥류 파열로 인한 뇌출혈로 알려졌다.

부고가 전해지자 영화계는 김동호를 위원장으로 영화인장 장례위원회를 꾸리기로 했다. 영화 감독 이우석, 임권택, 정지영, 배우 김지미, 박정자, 박중훈[], 손숙, 안성기 등이 고문을 맡았다. #

또한 강수연의 복귀작으로 알려진 넷플릭스 영화 정이는 그녀의 유작이 되었다.#

빈소는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 2층 17호에 차려졌으며 발인은 11일이었다

 

강수연 그외정보들

한국 연예계에서 최초로 억대 개런티를 받은 여성 연예인이다. # 1992년, 영화 '그대안의 블루'를 통해 개런티 2억을 받았다고 한다. 1992년 시점에서는 감히 상상도 못하는 수준. 광고 출연료는 편당 4억에 달했다.


2005년, 영화 '한반도'에서는 카메오 출연만으로 억대 개런티를 받았다고 한다. #


2001년 드라마 '여인천하'를 통해 배우 최초로 회당 출연료 500만 원 시대를 열었다. 이 일을 계기로 고가의 개런티를 요구하는 탑 배우들이 증가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참고로 엔딩 클로징을 오로지 자신에게만 맞추라고 요구했는데, 이유는 오랜만에 브라운관으로 복귀한 자신의 자존심에 상처를 주기 싫었다고 한다.


불과 3살 때인 1969년에 MBC 공채 1기 탤런트로 데뷔했다. 나이차가 훨씬 나는 조경환, 임현식, 김애경, 박은수와 데뷔 동기다.


현재는 '여인천하'의 정난정 이미지가 대외적으로 잘 알려졌으나, 전성기부터 영화에 전념해 영화 관련 활동에 집중했다. 특히 대한민국 최초로 세계적인 국제 영화제에서 본상을 수상했다는 점에서 당시 언론과 국민들에게 영화계의 상징적인 배우로 각인되게 되었다.


'아역 배우 출신은 성인이 된 후 성공하기 힘들다'는 편견을 최초로 깬 주인공이다.[] 강수연은 뒤에도 나오듯이 초등학교 입학 훨씬 이전부터 계속 인지도 높은 드라마에 출연해 대중들에게 굉장히 인지도가 높은 아역 배우 출신이다. 이미 대중들에게 일정한 이미지가 각인이 되었음에도, 성공적으로 성인 배우 이미지 전환에 성공한 케이스다.


상당한 동안이다. 전성기였던 1980년대 후반에도 미인으로 평가 받았으며, 아주 어렸을 때부터 아역 배우로 활동해왔기 때문에 성형 논란도 없다. 이목구비가 새침하고 오밀조밀해서 귀엽고 독특한 느낌을 준다.


광고와 행사 등에 모습을 드러낸 적이 거의 없으며, 사적으로도 스캔들 같은 잡음이 거의 없는 편이었다.


이성민이 강수연을 우상처럼 여겨 왔다고 한다. 한 번도 만나지는 못했다고 했고, 강수연이 세상을 떠나면서 끝내 만나지 못 했다.


경수진이 배우를 하겠다고 마음먹은 계기가 된 사람이 강수연이라고 한다.


최진실이 동명여중을 다니던 시절 같은 재단 고등학교를 다녔다. 참고로 최진실 역시 선배[]인 강수연을 동경하여 배우의 꿈을 키웠으며 아역배우로 활동하던 강수연의 드라마를 전부 챙겨 보며 어릴 때부터 강수연을 좋아했다고 한다. 최진실 데뷔 후 서로 친해져 전화 통화를 자주 했다고 한다.


김하늘이 '이홍렬쇼'에서 연예인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배우로 강수연을 꼽았다. '동감' 시사회 때 참석한 강수연의 실물을 보고 오밀조밀한 이목구비에 감탄했다고 한다.


전성기에 무명 단역 배우나 스태프들을 잘 챙겨주기로 유명했다. 촬영하던 영화가 끝나면 항상 본인의 돈으로 뒷풀이를 하면서 저임금으로 고생하는 스태프들과 무명의 단역들에게 한턱을 내곤 했다. 그때 자주 하던 말이 "우리 영화인이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였다고 한다. 부산국제영화제를 맡을 때에도 했다고 한다. 류승완은 무명 시절 이 말이 너무 멋있게 들려서 자신의 영화 베테랑에서 주인공 서도철의 대사로 인용하게 되었다.


남한테 술 사주기를 좋아하는 만큼 자신도 술을 잘 마셨다. 사실 잘 마시는 정도가 아니라 당대 대적할 자가 없는 전설적인 주당이었다. 영화계에 즐비한 애주가들 중 아무도 강수연을 술로 이겨본 적이 없다고 한다. 특히 무서운 점은 술을 마셔도 취한 티가 안 난다는 것인데, 일설에는 강수연이 취기가 돌면 탁자 밑에서 신발을 벗는 것으로 구분할 수 있다고 했다.


"왜 아직 결혼을 안 했냐"는 질문에 "못 했다"고 답한 적이 있다. 본인도 하고는 싶은데 좀처럼 기회도 연도 닿지 않을 뿐이라고 한다. 미혼인 채로 사망하는 바람에 평생 독신으로 살았다.


'여인천하'로 대성공을 거두었음에도 이후 사극 촬영이 전무한데,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강수연이 '여인천하'에 출연할 당시에 작품이 추가 연장되면서 정난정 캐릭터가 본인이 생각하던 점에서 많이 멀어지면서 배역에 상당히 부정적이었다

고 한다. 그러나 주인공이 드라마에서 혼자 빠질 수 없어서 계속 찍었다고 한다. 이후에는 사극 연기에 지쳐서 다른 사극 섭외를 모두 거절했다고 한다. '여인천하' 이후 사극 연기는 '한반도'에서 명성황후로 짧게 등장한 것이 전부다.


2021년 3월 15일, 영화진흥위원회에서 진행한 'KOREAN ACTORS 200' 캠페인에 참여했다.#


2022년 4월 17일, '스타다큐 마이웨이'에 출연한 심권호와의 전화통화로 음성 출연했다.#


아역 때는 손창민과 많은 작품과 광고를 함께 했다. 그러나 성인이 되고선 고래사냥 2,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 이후 같이 작품을 하지 않았다.


1989년 월간지 <샘이깊은물> 7월 호 기사에 따르면, 독립적인 성품이라 당시 매니저 없이 혼자 스케줄을 잡고 여러 가지 일을 직접 처리해 왔다고 한다.# 당시로서도 매우 독특하게 비쳤다고 한다. 성공한 배우임에도 집에 가정부조차 두지 않았다고.